철없는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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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추석에 안동에 계신 부모님을 만나러 갔었는데, 가족들이 간만에  안동 도산서원을 가보고싶다고 하여 방문하였습니다. 어릴 때 가보고 한번도 안가보았는데 정말 풍경이 멋진곳으로 변해있더라구요!!

 

지금부터 안동 도산서원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동 도산서원 방문 후기

 

안동 도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주차는 1시간에 2,000원입니다.  현금만 받으니까 꼭 현금 준비하고 가세요!!

 

추석 연휴에 왔더니 분식점, 편의점, 전통문화 상품점 등 편의점을 제외하고 모두 문이 닫혀있네요!! 그리고 안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도산서원 주차장까지 올수 있나봅니다.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네요 

 

편의점 옆에는 안동시 관관안내도와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추석 연휴라서 아무도 없지만 보통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다고 하네요.

 

보통 주차를 하고나면 도산서원 입구로 향하는 팻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번 가봅니다.

 

도산서원 입구에 입장료 내려고 보니 추석에는 무료입장이라고 합니다. 앗싸 가오리!!!!! ㅋㅋㅋ 사실 명절 이외에는 입장료를 내야하는데 요금표는 어른이 1,500원 청소년 군인이 700원 어린이는 600원 입니다. 안동시민은 40% 정도 싸다고 보시면 됩니다. 

 

도산서원 들어가기전 도산서원이 건립된 역사에 대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도산서원은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된 것으로 퇴계 이황 (1501 ~ 1570)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과 제자들이 향사하며 후학을 양성해 온 곳이다. 영지산을 뒤로하고 동취병, 서취병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 안에 안동호를 바라보며 자리잡고있다. 선조가 이름을 내렸고, 편액은 동왕 8년(1575년)에 석봉( 우리가 알고있는 그 한석봉 ) 한호가 썼다.  

 

 

도산서원 들어가기 전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도산서원" 이라고 비석 같은게 세워져 있네요. 

 

그 옆에는 도산서원의 지도가 보입니다. 상당히 오래되었는지 색깔이 맛이 갔습니다.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 관람객 준수사항을 한번 숙지합니다. 

 

입구로 들어가자 옛날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이 가마를 타고 이 거리를 지나다녔을 상상을 하니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길을 걸어 들어가자 바다 처럼 넓은 안동호의 모습이 풀숲과 어우러져 도심에서는 절대 볼수 없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안동호 중심에  섬처럼 생긴 "시사단" 이 외롭게 홀로 우뚝 솓아 있습니다. "시사단"은 정조가 퇴계 이황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유림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특별과거인 " 도산별과 "를 보던 장소 입니다.  지금은 비각이 세워져있다고 합니다.( 비각 : 후세에 사적을 전하기 위하여 세운 비의 보존을 위해 건립한 건물 )

 

사실 저 " 시사단 " 주변에는 원래 강변 송림이라는 마을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1974년 댐 건설로 인해 마을은 수몰이 되었고 화가난 유림들이 지상 10m 정도의 흙을 쌓아서 그 위에 비각을 옮긴것이지요!!

 

조금더 길을 걷다보면 천광운영대라고 있는데 이곳에서 "시사단"과 그 주변 풍경들이 아주 잘 보입니다. 관광객들은 이 천광운영대 주변에 풍경이 매우 좋다보니 사진을 많이 찍더라구요!! 

 

시사단 주변 풍경을 한번 감상해 보시죠!!

 

천광운영대를 지나면 퇴계 이황선생이 은퇴 후 남은 여생을 보냈다는 도산서원이 보입니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기전 많은 나무들이있는데 특히 엄청난 나무가 하나 버티고 있습니다.

 

왕버들이라 불리는 나무 입니다. 

 

나무가 옆으로 쭉~ 뻗어있어서 막대기로 받쳐놓았습니다. 

 

정말 웅장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서원 바로 앞에는 "열정"이라 불리우는 우물이 있습니다.  

석정감열(石井甘冽), 네모지게 조성된 석조 우물이다. 『역경』의 ‘정괘(井卦)’, ‘정열한천식(井冽寒泉食)’의 우물의 의미를 취하여 '열정'이라 하였다. 도산서당 시절부터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물이 맑고 맛이 좋다. 선비들의 세심장(洗心場)과도 같다.‘우물은 마을이 떠나가도 옮겨가지 못하고, 길어도 줄지 않으며, 오가는 사람 모두가 즐겨 길어 마시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주인 없는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마시듯 자신의 노력으로 인격과 지식을 쌓아, 누구나 즐겨 마실 수 있는 샘물과 같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생각보다 깊었던 우물.

 

도산서원의 전체 서원 배치도라고 합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생전에 강학(講學)하던 곳이며, 도산서원이라 함은 선생 사후 후학들이 그의 학덕을 기리고자 지은 서원과 사당을 포함하여 일컫는 말이다. 서원의 배치 형태는 교육시설인 강당이 앞에 있고 제사 시설인 사당이 뒤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로서, 후대의 많은 서원들이 이를 본받았다.특히 조선성리학의 본산이자 영남 유학의 구심점으로서 그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던 도산서원은 한국 서원의 종주로서 인정받고 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 서당으로 들어서자 내 눈앞에 마치 퇴계 이황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농운정사"라고 하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가 보였습니다.

농운정사는 문화생들이 공부하는 집으로 8칸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시습재' '지숙료' '관난헌' 이라 이름을 짓고 합해서 농운정사라 하였다. 공()자형 집으로 지었는데 이는 공부한다는 뜻도 담겨 있고 기숙사 건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도산서당을 볼수있다는 표지판을 따라 걸음을 옮겨봅니다.

 

20초도 되지 않아 도산 서당에 도착합니다.

도산서당은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였으며, 기단은 화강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하였고, 주초는 자연석 주초를 그리고,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지붕은 와가이며 와구토로 마감하였고, 연못은 조선식 연못으로 되어있다. 이 서당은 17세기경 세워진 조선시대 건물로서 원형이 잘 보존된 채 남아있어 조선시대 서당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정면3칸 측면 3칸의 와가로 지붕은 막세로 마감하였으며,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고 기단은 화강석을 다듬어 한줄로 쌓았으며, 주초는 화강석 호박주초이다.외삼문은 솟을 대문으로 대문양측을 창으로 사용하고 있다.

 

직진을 쭉하면 진도문이 보입니다. 진도문은 도산서당의 위쪽으로 서원을 건립하면서 도산 서당과 농운정사의 사이에 진입로인데요 진도문은 이 진입 공간을 따라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아래쪽의 서당 영역과 서원 영역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진도문을 지나 서원 안으로 들어가니 오잉? JTBC TV조선 등 여러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퇴계 이황선생님의 직계 후손으로 도산 서원을 지키는 종가의 제일 큰 어른으로 보였습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것이 조선시대를 보는 듯 했습니다. 

 

원래는 저 뒷편도 지나서 가야 하는데 취재때문에 더이상 갈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돌릴수 밖에없었습니다.

 

조금 내려가면 옥진각이라고 퇴계 이황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는 전시관입니다. 들어가보면 역사에 대해 배울것이 많다고 하는데 코로나때문에 옥진각 내부가 폐쇄되어있네요 ㅠㅠ  정말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산서원을 빠져나와 벤치에 앉아 시사단 풍경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있었습니다. 

 

간만에 복잡한 도심을 떠나 이렇게 공기좋고 풍경 좋은 도산서원에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도 만약 안동 여행을 오셨다면 도산서원을 방문해 보세요!! 

 

색다른 경험이 될것 같습니다.

 

끝.